서부의 끝자락, 공작령 외곽, 바다의 냄새가 나는 곳, 마물의 침입이 적은 곳, 허나 사람의 발길은 드문 장소. 사람 둘을 세워 올려도 내부를 볼 수 없는 격리된 별채. 그곳으로 전 공작의 거처를 옮겼다.
‘전 공작은 병세가 심하여 요양하게 되었다.’ 무미건조한 한 줄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그에 관한 소식은 일절 들려오는 것이 없었다.
공작가 내에 패륜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자극적인 소문마저 돌았지만, 그것을 입 밖으로 뱉는 이는 없었다.
정보는 전무.
별채에 발걸음 하는 자는 극소수.
336년, 겨울이 시작하고 해가 빠르게 지기 시작하던 때.
공작은 식사 대신 작은 유리병을 챙겨 별채로 걸음 했다.
긴 복도를 걸어 묵직하게 닫힌 문을 열었다.
어두운 공간, 맞이해 주는 건 당신이 아닌 적막한 공기.
인기척에 고개를 돌릴 즈음, 천지가 뒤바뀌었다.
새까맣던 시야가 돌아오니 당신이 보였다.
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군.
유리병의 액체가 말을 건다.
찰랑,
오늘이군! 하나의 페리온이 끊어지는 날!
찰랑,
페리온 주제에 오래 버텼어.
그렇지 않나?

천륜을 저버린다.
법은 네 죄가 아니라며 눈을 감는다.
하늘은 재로 뒤덮였으니 별도 달도 침묵을 지킨다.

고요 속에 잠드소서.